
고린도전서가 교회의 내부적인 질서와 도덕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훈계'의 성격이 강했다면,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의 가장 인간적이고도 뜨거운 고백이 담긴 '변호'의 서신입니다. 고린도 교회 내부에 침투한 거짓 사도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공격하고 그의 진심을 왜곡하자, 바울은 자신의 약함과 고난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눈물로 호소하며 기록했습니다.
서론: 눈물로 쓴 화해의 편지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겪은 극심한 사역적 위기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낸 이후에도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바울을 향한 비난은 거세졌습니다.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지만, 직접 만나면 몸도 약하고 말도 서툴다"는 인신공격이 난무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에베소 사역 중 고린도를 급히 방문했으나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왔고(근심의 방문), 이후 엄한 책망을 담은 '눈물의 편지'를 디도 편에 보냅니다. 다행히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했다는 소식을 디도에게 전해 듣고, 기쁨과 안도 속에서 사도권의 정당성과 복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이 편지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1. 환난 중의 위로와 '질그릇에 담긴 보배' (1장 ~ 4장)
바울은 편지의 서두부터 자신이 겪은 극심한 고난을 숨기지 않습니다.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너무 커서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 고난은 바울에게 중요한 영적 원리를 깨닫게 했습니다.
- 위로의 하나님: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를 위로하시며, 그 위로를 경험한 자만이 다른 고난당하는 자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통이 교회의 위로와 구원을 위한 통로가 됨을 역설합니다.
- 새 언약의 일꾼: 바울은 율법의 조문이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은 '새 언약의 일꾼'임을 강조합니다. 모세의 얼굴에 나타났던 사라질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복음의 영광을 맡았다는 자부심입니다.
- 질그릇 속의 보배: 바울은 인간을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비유합니다. 연약한 인간(질그릇) 안에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담았기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심히 크기 때문임을 선포합니다. 이는 사역자의 권위가 외모나 웅변술이 아닌,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옴을 보여주는 핵심 사건입니다.
2. 연보(헌금)의 원리와 화목의 직분 (8장 ~ 9장)
고린도후서의 중간 부분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연보(헌금)' 문제를 다룹니다. 이는 단순한 돈의 문제를 넘어,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증명하는 신앙적 행위였습니다.
- 마게도냐 교회의 본: 바울은 극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드린 마게도냐 교회들의 사례를 들며 고린도 교인들을 도전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은혜임을 강조합니다.
- 심는 자의 원리: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원리를 통해, 인색함이나 억지가 아닌 즐겨 내는 자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성도의 경제 활동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 화목하게 하는 직책: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으므로, 우리 또한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구제와 연보는 바로 이 화목의 직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3. 사도권의 변호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10장 ~ 13장)
편지의 후반부에서 바울은 자신을 비난하는 거짓 사도들에 맞서 자신의 사도권을 강력하게 변호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세상적인 자랑이 아닌,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역설적인 방식이었습니다.
- 광고(狂告)와 고난의 목록: 거짓 사도들이 자신들의 이력과 신비 체험을 자랑할 때,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 겪은 매 맞음, 갇힘, 굶주림, 파선의 위협 등을 나열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참된 종이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 셋째 하늘의 체험과 가시: 바울은 14년 전 셋째 하늘(낙원)에 이끌려 간 신비한 체험을 언급하면서도, 곧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의 가시(사탄의 사자)'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약함 속의 강함: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깨달음 이후 오히려 자신의 약한 것들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머물며, 그때 비로소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기독교 역설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결론: 약함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능력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겪은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 그리고 그것을 덮는 하나님의 위로가 교차하는 감동적인 서신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우리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진정한 덕목이 화려한 스펙이나 권위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변치 않는 복음에 대한 진실함과 성도를 향한 애끓는 사랑임을 배웁니다.
고린도후서의 마지막은 오늘날 축도의 기원이 된 구절로 끝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은 자신을 비난했던 공동체를 결국 이 축복의 기도로 품어 안았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약함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그 빈자리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화목의 직분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