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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꼭 알아야 할 3가지 사건 :공의의 심판과 위로의 하나님

by 라킬프에22 2026.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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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위로'라는 이름의 엄중한 경고

나훔(Nahum)서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나훔(נַחוּם)', 즉 '위로' 또는 **'위로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멸망을 선포하는 예언서의 이름이 '위로'라는 것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나훔이 활동하던 시기는 대략 기원전 7세기 중반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앗수르 제국(수도: 니느웨)은 고대 근동의 절대 강자로君臨하며,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를 끊임없이 압제하며 잔인한 통치를 일삼았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앗수르는 공포와 절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때 나훔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반드시 멸망할 것임을 선포합니다.

따라서 나훔서의 메시지는 가해자인 앗수르에게는 **'최후통첩'**이지만, 피해자인 유다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여전히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며 그들의 고통을 갚아주실 것이라는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요나 선지자 이후 약 100~150년 만에 다시 선포된 니느웨의 운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균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첫 번째 사건: 하나님의 현현과 질투하시는 여호와 (1장)

- 심판의 근거와 하나님의 성품 선포

나훔서의 시작은 구체적인 심판의 묘사보다 먼저, 심판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신가'**에 집중합니다. 이는 단순한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임을 명시하는 것입니다.

  •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 1장 2절은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여기서의 '질투'는 인간의 옹졸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열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지 않으시며, 당신의 이름을 모독하고 약자를 짓밟는 세력에 대해 반드시 보응하시는 분임을 밝힙니다.
  • 창조주의 권능: 나훔은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바다가 마르고 강들이 메마르며, 바산과 갈멜, 레바논의 숲들이 시든다고 묘사합니다. 당시 앗수르는 자신들의 군사력이 신과 같다고 믿었으나, 나훔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견고한 세력도 안개처럼 사라질 존재임을 일깨웁니다.
  • 선인과 악인의 분기점: 1장 7절은 나훔서 전체의 핵심 구절 중 하나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악인에게는 두려운 심판자이시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이 첫 번째 국면은 **"역사의 심판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함에 있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적 선포입니다.


2. 두 번째 사건: 니느웨의 함락과 물의 심판 (2장)

- 난공불락 요새의 허망한 붕괴

2장에서는 니느웨가 실제로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가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전쟁 생중계처럼 묘사됩니다. 니느웨는 당시 성벽 높이가 30미터에 달하고, 성벽 위로 전차 여러 대가 동시에 달릴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요새였습니다.

  • 붉은 옷의 용사들과 병거의 소음: 침공하는 군대(바벨론-메대 연합군)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붉은 방패와 옷은 전쟁의 잔혹함과 치열함을 상징하며, 거리에서 미친 듯이 달리는 병거들은 니느웨의 방어선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을 예고합니다.
  • 강의 수문이 열리는 사건: 2장 6절의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라는 구절은 역사적으로 매우 놀라운 성취를 보여줍니다. 기록에 따르면, 니느웨를 둘러싼 티그리스 강과 코세르 강의 범람으로 성벽의 일부가 무너졌고, 그 열린 틈을 통해 연합군이 진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랑하던 자연적 지형과 수로를 오히려 그들의 멸망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 사자 굴의 비극: 앗수르는 스스로를 '용맹한 사자'로 칭하며 주변 나라들을 찢고 삼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자 굴을 폐허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강포를 일삼는 권력이 어떻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 두 번째 국면은 **"인간이 세운 가장 높은 성벽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종잇장과 같다"**는 사실을 역사적 실재로 증명합니다.


3. 세 번째 사건: 피의 성읍에 내린 화(禍)와 영구한 종말 (3장)

- 죄악의 고발과 회복 없는 심판

3장은 니느웨가 왜 멸망당해야만 하는지 그 도덕적, 영적 원인을 고발하며 최종적인 선고를 내립니다.

  • 피의 성(City of Blood): 니느웨는 거짓과 포악이 가득하고 탈취가 떠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앗수르는 포로들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등 고대사에서도 유례없는 잔혹한 통치를 펼쳤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피의 성'이라 규정하시며, 그들이 뿌린 피의 대가를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 노아몬의 교훈: 나훔은 당시 이집트의 강력한 도시였던 '노아몬(테베)'이 앗수르에게 멸망했던 사건을 언급합니다. 니느웨가 노아몬을 무너뜨렸을 때 스스로 위대하다고 믿었으나, 이제 동일한 운명이 그들에게 닥칠 것임을 경고합니다. 이는 과거의 승리가 미래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준엄한 가르침입니다.
  • 박수 소리로 끝나는 종말: 보통 선지서들의 결론은 남은 자들의 회복과 소망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나훔서의 마지막(3장 19절)은 매우 독특합니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네게 늘 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니느웨의 멸망 소식에 온 세상이 박수를 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으며,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역사 속에서 지워질 것임을 선언합니다.

이 세 번째 국면은 **"악의 세력은 결국 인류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을 확증합니다.


결론: 나훔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나훔서는 단순히 고대 국가의 패망 기록이 아닙니다. 이 짧은 예언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영적 교훈을 남깁니다.

첫째,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겉보기에는 강대국이나 거대 자본, 권력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 모든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길 위에 있습니다.

둘째, 공의는 반드시 실현됩니다. 억울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악인의 포악을 갚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성도는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피난처이십니다. 교만한 니느웨는 멸망했으나, 비록 약하고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 피하는 유다와 같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환난 날의 산성"이 되어 주십니다.

2,500여 년 전 니느웨를 향한 나훔의 외침은, 오늘날 우리 삶 속에 도사린 수많은 '니느웨'와 같은 교만과 불의를 경계하게 하며, 오직 선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만드는 영원한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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