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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꼭 알아야할 3가지 사건 : 도망치는 선지자와 하나님의 끈질긴 추적

by 라킬프에22 202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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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요나서는 소예언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단순히 '물고기 배 속의 기적' 정도로만 이 이야기를 기억하곤 합니다. 사실 요나서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와 인간의 좁은 편견 사이의 갈등을 다룬 깊이 있는 문학적, 신학적 보고입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불순종과 도망, 회개와 구원,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인간의 완악함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춥니다. 

[서론: 도망치는 선지자와 하나님의 끈질긴 추적]

성경의 수많은 선지자는 대부분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거나, 최소한 그 사명을 감당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정반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 유일한 선지자입니다.

요나가 받은 명령은 당시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을 꾸짖고 심판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요나에게 니느웨는 멸망해야 마땅한 악의 축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다면, 그것은 요나에게 있어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가 있는 동쪽이 아닌, 당시 세상의 끝이라 여겨졌던 서쪽 끝 '다시스'로 향하는 배에 오릅니다. 이 서론적 배경은 요나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정해놓은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 요나서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정적 사건을 전개합니다.


[사건 1: 거대한 폭풍과 물고기 배 속에서의 3일]

요나가 배를 타고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자연 만물을 동원하여 그를 막아섭니다. 바다에는 거대한 폭풍이 일었고, 배에 탄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직면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방인 사공들은 각자의 신에게 부르짖으며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는 배 밑층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사명에서 도망친 영적인 무감각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제비뽑기를 통해 폭풍의 원인이 자신임을 고백하게 된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는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끝까지 니느웨로 가지 않으려 했던 고집스러운 인간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큰 물고기'를 예비하십니다.

물고기 배 속에서의 3일은 요나에게 있어 '강제적인 멈춤'이자 '무덤'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흑암의 공간에서 요나는 비로소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기도를 올립니다. (요나서 2장)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신비한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죽음의 문턱까지 내려간 자에게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또한,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요나의 표적'에 비유하심으로써, 이 사건은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과 소생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사건 2: 니느웨의 유례없는 집단적 회개]

물고기 입에서 토해내진 요나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이번에 그는 순종하는 척하며 니느웨로 향합니다. 니느웨는 성 안을 가로지르는 데만 사흘이 걸리는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단 하루 동안만 돌아다니며 매우 무성의하게 외칩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 선포에는 자비나 회개에 대한 권유가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심판의 경고뿐이었습니다. 요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빨리 심판이 임해 니느웨가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증오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요나의 짧고 무성의한 한마디에 니느웨 왕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든 거민이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회개 장면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진심 어린 돌이킴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이 파멸이 아닌 '돌이킴'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이라는 울타리 안에 하나님을 가두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담장을 넘어 모든 민족의 통치자이자 구원자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건 3: 박넝쿨 교훈과 하나님의 마지막 질문]

니느웨가 구원받자 요나는 격렬하게 분노합니다. 그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항변하며 성 동쪽에 앉아 니느웨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봅니다. 이때 하나님은 요나에게 뜨거운 태양 볕을 가려줄 '박넝쿨' 하나를 예비하십니다. 요나는 박넝쿨의 그늘 덕분에 매우 기뻐합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하나님이 벌레를 보내 박넝쿨을 시들게 하시자 요나는 다시 화를 내며 죽고 싶어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요나서의 주제이자 결론인 강력한 일침을 가하십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 4:10-11)

이 마지막 사건은 요나의 이기적인 감정과 하나님의 광대한 사랑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요나는 자신에게 당장 유익을 주는 박넝쿨 하나가 사라진 것에는 분노하면서도, 12만 명의 소중한 생명이 죽어가는 문제에는 냉담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입을 막으시며, **"나의 사랑은 네가 미워하는 대상에게까지 미친다"**는 선언으로 이야기를 끝맺으십니다. 요나서는 요나의 대답이 아닌,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이 납니다. 이는 독자인 우리에게 "너는 과연 누구를 아끼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결론: 요나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요나서는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니느웨'가 있습니다. 내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 구원받지 않았으면 하는 집단, 혹은 내가 정해놓은 정의의 잣대로 심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대상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義)에 취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불의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도망치는 요나를 끝까지 추격하여 살리셨고, 그 고집스러운 선지자를 통해 원수들까지 구원하셨습니다.

이 3가지 사건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진리를 깨닫습니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 숨을 수 없으며, 고난은 때로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큰 물고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진정한 회개는 신분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은 편협한 민족주의나 개인적 감정에 갇히지 않는 '보편적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요나서는 요나라는 한 선지자의 실패담을 통해, 인간의 좁은 마음을 하나님의 넓은 마음으로 확장하라고 초대하는 책입니다. 2,500년 전 니느웨 언덕에서 분노하던 요나의 모습이 혹시 오늘 나의 모습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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