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더서는 성경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손길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라는 거대한 제국 안에서 멸절의 위기에 처한 유다 민족을 구원하신 에스더서의 핵심적인 3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서론: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의 통치기, 화려한 잔치와 권력의 정점에서 시작됩니다. 왕후 와스디가 폐위되고, 평범한 유다인 고아였던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은 표면적으로는 궁중의 암투와 행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장차 닥칠 민족의 위기를 대비하기 위한 하나님의 치밀한 사전 포석이었습니다.
이 책은 고난의 현장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침묵의 시대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고 계심을 강조합니다. 에스더서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신앙의 교과서입니다.
1. 하만의 음모와 에스더의 결단: "죽으면 죽으리이다"
첫 번째 핵심 사건은 유다 민족의 절멸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에스더의 위대한 결단입니다. 아각 사람 하만은 자신의 권력에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를 유다 민족 전체에 대한 학살 계획으로 확대합니다.
- 하만의 악행: 하만은 '부르(제비)'를 던져 유다인을 학살할 날짜를 정하고 왕의 인장을 빌려 조서를 공포합니다. 이는 유다 민족에게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습니다.
- 모르드개의 도전: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 애곡하며 에스더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는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며 사명을 일깨웁니다.
- 에스더의 헌신: 당시 왕의 부름 없이 왕 앞에 나가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엄한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3일간의 금식을 선포하며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신앙의 고백과 함께 목숨을 건 행보를 시작합니다. 이는 자신의 안위보다 민족의 생명을 우선시한 대속적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2. 반전의 밤: 잠 못 드는 왕과 하만의 굴욕
에스더서의 전개에서 가장 극적이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장면은 6장에서 일어나는 **'반전의 밤'**입니다. 이 사건은 인간의 계획이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어떻게 무력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 왕의 불면증: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 장대를 세운 바로 그날 밤, 왕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아 궁중 일기를 읽게 됩니다. 거기서 과거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 음모를 막았던 공로를 세웠음에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 역설적인 상황: 바로 그 시각, 왕은 하만을 불러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자기를 가리키는 줄 착각한 하만은 온갖 화려한 대우를 제안하지만, 왕의 명령은 "모르드개에게 그대로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섭리의 손길: 하만은 자기가 죽이려 했던 원수 모르드개를 왕의 말에 태워 성중으로 이끌며 그를 찬양하는 굴욕을 맛봅니다. 이 사건은 이후 에스더의 잔치에서 하만의 죄악이 드러나기 전, 이미 영적인 승기가 누구에게 넘어갔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대목입니다.
3. 부림절의 제정: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다
마지막 사건은 유다 민족의 대역전극과 이를 기념하는 **부림절(Purim)**의 제정입니다. 에스더의 지혜로운 폭로로 하만은 자신이 판 함정에 스스로 빠져 처형당하게 됩니다.
- 새로운 조서: 하만의 조서를 취소할 수는 없었지만, 왕은 유다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대적을 물리칠 수 있는 새로운 조서를 내립니다. 유다인들에게 그날은 학살의 날이 아니라 승리의 날이 되었습니다.
- 슬픔이 기쁨으로: 유다인들은 대적들을 물리치고 큰 승리를 거둡니다. 성경은 이를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명절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 부림절의 의미: 하만이 던졌던 '부르(제비)'에서 유래한 부림절은, 인간이 던진 제비(운명) 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는 절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유다인들에게 구원과 소망의 상징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 삶의 '에스더'를 향하여
에스더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영적 교훈을 남깁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사소한 만남과 사건들은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 속에서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갑니다. 둘째, 우리는 '이때를 위한' 사명자들입니다. 내가 가진 지위, 재능, 환경은 나만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도구입니다. 셋째, 최종 승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실현됩니다.
에스더가 보여준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믿음은 오늘날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정의와 사명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용기를 줍니다.